이제 또 하나의 고전적 열망인 밝은 피부에 대해 알아보자. 화장품의 역사는 피부 미백의 역사이다. 고귀한 창백함은 모든 시대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대로 어두운 갈색 피부는 하층계급의 표시였다.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 지기로 삼았음이라. 솔로몬의 아가에서 사랑에 빠진 여인은 자기 연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유사 이래 여성의 피부는 독이 든 정체불명의 연고와 약으로 칠해졌다.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피부가 창백하게 보이도록 하얗게 칠한 얼굴에 푸른 정맥을 그려 넣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과 중국에서도 하얀 얼굴이 바로 고귀함을 상징했다. 51개의 문화를 인류학적으로 연구한 결과 이 중 92퍼센트가 여성들의 하얀 피부를 선호했는데 그중에는 12개의 흑인 문화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트렌드는 어쩌다 생겨난 것일까?
모든 민족에서 여성의 피부는 남성의 피부보다 더 밝은 색을 띠는 편이다. 피부와 머리를 검게 만드는 멜라니의 생성은 여성호르몬의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따라서 밝음은 여성성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다. 사춘기에 이르면 소녀의 피부는 한층 더 밝아지고 반대로 소년들의 피부는 더 어두워진다. 또한 임신은 피부를 더 어둡게 만든다. 흰 피부는 두 가지 중요한 미의 요소 즉 성적 동종이형과 앳됨을 표현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봤을 때 지금까지 단 한 번 1960년대에 갈색 피부가 선호된 적이 있다. 경멸 되던 것이 갑자기 섹시한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태양과 바람은 노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빈둥거림을 위한 것이었고 노동은 닫힌 창 뒤의 그늘에서 행해졌기 때문이다.
금발은 왜 섹시하다고 느껴질까?
이상적인 여성의 조건에는 창백한 얼굴만 아니라 금발도 포함된다. 로마 여성들에게 있어서 독일 여성들의 머리색은 최신 유행으로 보였고 아름다운 여성들의 가발을 위해 금발은 북부의 주요 수출품이 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금발이 절대적인 미의 기준이 되었고 태어날 때 금발이 아니었던 사람은 밝은색 비단이나 가발로 머리를 덮었다. 또한 아름다운 남성들도 금발을 지니고 있었다. 영웅 서사시에서 갈색 머리는 종종 실수를 저지르는 기사로 검정 머리는 악당으로 묘사된다. 중세 시대에 색소 결핍으로 인해 금발이 생긴 후 르네상스 시대에 황금빛 머리가 유행색이 되었다. 여성들은 가능한 모든 잋크를 사용해 머리를 염색했고 하루 종일 적당한 금발을 만들기 위해 햇볕 아래에 서 있었다. 낭만주의 시대가 되어서야 낯선 것과 이국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시작되어 검고 동양적인 머리가 유행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붉은 머리와 거기에 어울리는 주근깨가 유행한 적도 있었다. 20세기가 되자 붉은색이 가장 많이 팔리는 염색약이 되었지만 자리 잡고 있다. 한번 살다 가는 인생 왜 금발로 보내지 않는 걸까? 라는 미국 작가 톰 울프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덴마크의 작은 대학도시인 오르후스에 있는 세계적인 정자은행이 금발 학생들을 우선적으로 찿고 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 의미를 반영한다.
절대로 변하지 않는 금발 선호 현상은 왜 생기게 되었을까?
창백함과 같이 여기서도 동종이형과 앳됨이 중첩되어 있다. 인간의 머리색은 어릴 때는 금발이었다가 점점 어두워지기 때문에 금발은 앳됨을 상징한다. 소녀의 경우 소년들보다 색의 변화가 더 천천히 진행된다. 그러므로 금발은 또한 여성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멍청한 금발이라는 편견은 최근에 생겨난 새로운 개념이다. 19세기의 많은 학자는 금발이 갈색 머리보다 덜 역동적이라고 확신했다. 심지어 생물학자인 헨리 핑크는 그런 이유로 금발이 1980년대 안에 멸종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금발이 지구에서 곧 사라지게 될 거라는 의견은 현재 라이프스타일 언론에서도 지배적이다. 그러나 학문적인 근거는 없다. 금발의 유전자는 열성이다. 즉 두 유전자가 만났을 때 금발의 효과는 우성인 갈색 머리 유전자에 의해 억압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금방 멸종될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금발 유전자는 갈색 머리 유전자나 다른 열성 유전자와 같이 다음 세대에 나타날 확률이 50퍼센트다. 헨리 핑크도 매력적인 금발 여성을 만난 뒤에는 자기 생각을 바뀠다.
올리히렌츠 지음/박승재 옮김.(2008).아름다움의 과학.프로네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