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인체의 신체에서 가장 복잡한 부분이다.
손바닥만 한 면적 안에 인간의 오감 중 네 개가 자리 잡아 마치 신분증에 있는 홀로그램처럼 인간의 정체성을 특징짓는 독특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수백만 명의 사람 중에 같은 얼굴을 갖고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조차도 얼굴이 다르다. 쌍둥이 중 한 명은 다른 한 명의 거울상이다. 필자 역시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아직도 할아버지가 우리를 구별하기 위해 머리 가마를 이리저리 돌려보시던 것이 기억난다. 얼굴은 사회적 존재인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따라서 우리의 얼굴은 그저 단순한 얼굴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우리는 서로를 구별하기 위해 시각의 힘을 빌린다. 당연히 얼굴은 우리의 신체 중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우리는 종이 위의 동그라미와 점을 보면서도 얼굴을 연상한다. 인간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신생아는 태어나서 첫 9분 동안 다른 어떤 것보다 얼굴과 비슷한 형태에 더 시선을 고정한다. 완전히 고립되어 자란 원숭이에게 다른 원숭이의 사진을 보여주면 자신의 동종을 알아본다. 얼굴 인식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심리학자 비기 블루스는 인간은 얼굴이 무엇인지를 알고 세상에 태어난다고 말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거기서 무언가를 읽어낸다.
그 얼굴 속에 들어있는 정보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낯선 소음을 듣게 되면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처음으로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그 안에 어떤 신호가 있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반응한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람의 얼굴을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다. 그 얼굴에서 얻어지는 신호에 따라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피하기도 한다. 얼굴은 발신자인 동시에 수신자다. 사람들이 제 주위에 있으면 그제야 비로소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된다. 43개의 표정 근육이 얼굴을 말하게 만들며 슬픔 분노 두려움 경멸 의심 놀람 기쁨 등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기본 언어를 만들어낸다. 이런 보편적인 언어 외에 지역적인 사투리까지 합치면 인간은 전체적으로 만 개가 넘는 표정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얼굴이 정신의 표현이라는 말은 우리의 정신 하나하나가 실제로 그 얼굴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우리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사적인 얼굴은 의식의 지배를 거의 받지 않으며 우리가 가진 감정들을 그대로 드러낸다. 두 번째 얼굴은 바로 사회적인 얼굴이다. 타인이 인지하는 것은 항상 이 두 얼굴의 혼합이다. 우리가 짓는 미소는 진실한 감정 표현과 의식적인 표현 사이에 있다. 즉 우리 얼굴은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핑곌 크롬이 말한 것처럼 외형과 인식 사이를 오간다.
하나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면 우리의 뇌는 엄청난 속도로 분석 작업을 시작한다.
아는 사람일까 아니면 처음 본 사람일까? 남자일까 여자일까? 젊은 사람일까 나이 든 사람일까?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알아내고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친구인가 적인가이다 이때 뇌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양과 크기가 편도핵 즉 아미그달라에 속하는 신경세포가 아주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눈 뒤쪽의 뇌 중앙 양쪽에 자리 잡고 있는 편도핵은 사회적 신호를 받아들이는 첫 번째 필터이다. 편도핵의 한 부분은 무엇보다 얼굴 표현을 인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국의 학자들은 뇌출혈로 인해 대뇌피질 속의 시각중추가 손상되어 밝음과 어두움을 구별하지 못하는 한 맹인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다. 그에게 얼굴 사진을 보여주자 손상되지 않은 아미그달라를 사용하여 좋은 표정과 나쁜 표정을 구별해냈다.
편도핵은 우리에게 두려움 믿음 증오 애정과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입력하여 수천 분의 1초 안에 표정에 반응하게 하는 일종의 위험 탐지기관이다. 그 외에도 상대방의 시선을 아주 민감하게 관찰하여 타인의 기본적인 질문인 저 말씀 하세요? 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편도핵은 소위 대뇌변연계의 한 부분으로서 어류와 파충류의 뇌에도 있다. 원래 여기서는 모든 후각 신호가 처리되었고 아직도 아미그달라는 후각기관과 연결되어 있다. 아미그달라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감정과 인지를 결합하는 것이다. 얼굴을 인식하는 과정에는 대뇌피질의 높은 영역도 작동한다. 가장 특성화된 신경세포가 있는 측두엽이 먼저 켜지는 것이다. 최소한 오른쪽 반구에 있는 부분이 작동을 시작한다. 이 중앙 조절 실이 손상을 입으면 정상적인 인간은 소위 얼굴 맹인이 된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얼굴도 다른 사람의 얼굴도 인식하지 못한다. 다만 목소리나 체취 또는 걸음걸이로 사람을 구분할 수 있을 뿐이다. 곧 이들 중 한 명이 소개될 것이다.
우리는 얼굴을 볼 때 제일 먼저 눈을 본다.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이루어진 한 실험에서 피실험자들은 눈을 없앤 사진을 본 후 그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0.032초 뒤에 그 사진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이로써 우리의 뇌는 눈 입 코의 순서로 얼굴을 인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왜 눈이 제일 먼저 인식되는 것일까? 에스엠이라는 별명을 가진 환자가 얼마 전 네이처 지에 소개되었다. 학자들은 이 환자에 대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표했다. 어느 날 에스엠은 자신과 관련하여 놀라운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서 두려움의 감정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 기쁨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들은 모두 읽을 수 있었지만 두려움은 읽을 수 없었다.
학자들이 밝혀낸 원인은 간단했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본 때 제일 먼저 눈이 있는 부분을 쳐다보지만 보기 때문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두려움의 신호를 수신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모든 감정은 입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감정들을 읽는 데는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에스엠의 두려움 불감증의 원인은 편도핵에 생긴 작은 문제 때문이었다. 보통 아미그달라는 우리가 무엇보다 상대편의 눈을 탐구하고 두려움의 표시나 다른 감정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눈동자에 의해 정해지는 시선의 방향을 알아채도록 도와준다. 이로써 우리는 중요한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한다. 위험이 닥치게 될까? 그리고 그 위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의 몸이 위험에 대해 갖고 있는 반사 기능은 바로 판다가 자기 등 뒤의 위험을 다른 판다 곰의 커다래진 눈을 보고 알아차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올리히 렌츠 지음/박승재 옮김.(2008). 아름다움의 과학. 프로네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