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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 위로 그리고 죽음

by blogger82391 2025. 3. 17.

아름다움을 다루는 더 나은 방법은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이 가진 권력은 그렇게 간단히 없어지지 않는다. 또 현실은 그렇게 많이 바뀌지도 않았다. 단지 우리가 현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 뿐이다.

 

아름다움
아름다움

 

 

물론 모든 사물에 각기 등급이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외모의 폭정을 원망하는 데도 이유가 있다. 그리고 아름다움에 맞서야만 하는 이유도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권력을 그저 부정만 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도움도 되지 않는 일다. 상극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름다움을 부정하는 것과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것은 메달의 양면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아름다움을 향한 광기에 관해 쓴 수많은 책들 중 한 권에서 여류 저널리스트인 월트로트포쉬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관능적인 힘은 젊음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라고 적었다. 주름 안경 축 처진 엉덩이 성숙하고 품위있는 외모 같은 인생의 흔적도 철저히 섹시하게 보일 수 있다. 그녀의 말 속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과 똑같은 모티브가 숨어 있다.

 

이것이 바로 고통을 떨치려고 애쓰는 강박관념이다.

지금 유행하는 동안 만들기처럼 다가오는 것은 결국 정치적 교정의 다름 아니다. 나이 먹는다는 게 아름다움의 사라짐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은 영원한 젊음에서 구원을 찾고자 하는 사람과 마찬가지고 고통을 덮어둘 뿐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 둘은 하나다. 나이 먹는 것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쇠퇴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그리고 죽음에 대한 강박관렴에서.아름다움은 언젠가는 끝이 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어느 면에선 인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진수 인생의 꽃 새로운 삶의 출구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아름다움은 이미 그 안에 죽음의 씨앗을 품고 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를 더욱 자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움과의 이별은 삶과의 이별이기도 하다.

 

젊음에 대한 집착은 근본적으로 죽음을 잊으려는 강박관념의 한 형태이다.

젊음을 붙들고자 하는 시도들은 이별의 슬픔을 피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그렇게 볼 때 젊음은 어쩔 수 없이 이 시대의 금송아지가 되었다. 이 문화는 내세를 없앴고 이제는 죽음의 공포로 떨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습관적으로 문학작품을 증인으로 내세운다. 우리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실제로 문화가 사용하는 수단은 모두 옳다. 그것들이 우리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잊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말이다. 아름다움을 향한 광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름다움을 신격화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우리가 아름다움의 덧없음을 잊으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움이 하나의 광기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전투에 자진해서 나와 있다. 철학자 빌헬름 슈미트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을 영원히 얻고자 하면 인생은 사라진다. 마치 우리가 쾌락을 항상 투리고자 할 때 쾌락이 없어지는 것처럼. 모든 쾌락이 영원하다면 쾌락이 없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만약 죽음이 없다면 우리는 죽음을 고안해낼 것이다. 영원토록 계속되는 지겨운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올리히렌츠지음/박승재옮김.(2008).아름다움의과학.프로네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