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에게 허락된 미적 대선과 허락되지 않은 미적대선 사이의 경계를 두고 있으며 그에 대한 자신만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그 경계는 완전히 다른 곳에서 선을 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머리색과 주름 펴는 성형 사이에는 어떤 경계도 없지만 아름다움이 게임이 아닌 강요로 바뀌는 순간 그것이 경계가 될지도 모른다.

미용 관리는 무엇보다도 자기 연출이며 따라서 일종의 놀이가 될 수도 있다.
변장 놀이도 그렇지 않은가. 이 놀이에는 인간적 욕구를 건드리는 면이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것이다. 자기 외모를 가지고 즐길 수 있는 자는 항상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찿는다. 물론 이것은 자기 자신에게 좋은 것이다. 약간의 나르시시즘은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핵심일 수도 있다. 아름다움을 향한 광기는 오래전부터 놀이가 아니라 전문 집단의 손놀림에 의해 변질되었다. 놀이에서 얻는 즐거움 대신에 계명 잃은 완벽주의 없는 단일화가 들어서 버렸다. 누구나 자기 자신이 가지지 못한 부족함에 겁을 먹고 그에 저항하려고 몸부림친다. 흥미로워야 할 가장무도회가 두려움에 떨게 하는 변장이 돼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미용 잡지들은 계속해서 즐길 거리를 내놓는다. 뷰티 등등의 유혹적인 표상 아래서 유치하면서도 제 딴에는 자못 진지한 자기 불안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즐거움을 주는 연출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지속적인 스트레스만이 남는다. 3일 안에 몸짱 만들기는 한 주일이 가고 그다음 주가 되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그러고는 다시금 우리를 짓누른다. 3일이 아닌 3주가 지나도 몸짱으로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의 올가미
미용 산업과 그들이 휘두르는 무기는 놀이를 철저하게 변질시켰다. 자기가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축복으로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이제 생각도 하지 않고 그것으로 기뻐하지도 않는다. 항상 더 예쁜 게 있기 때문이다. 모두 다람쥐 통에서 달리고 행운의 역설 희생양이 된다. 더 많은 것을 얻으러 다니면 다닐수록 더 불행해지기만 한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여피족은 돈에 관심이 없는 여피족보다 평균적으로 더 불행하다. 아름다움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수많은 연구가 똑같은 역설적인 결과들을 내놓는다. 즉 자기 신체에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불만은 더욱 커진다. 자신만의 아름다움에서 나온 자기 가치는 분명 쉽게 흔들릴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방어
그럼 우리는 아름다움을 경멸하고 예쁜 것 대신에 좋은 것과 진실한 것만을 추구해야 할까? 진실한 아름다움은 우리 안에 있다. 이 말은 우리에게 위안을 줄 뿐 아니라 아름다움에 대해 우리가 품고 있던 마지막 문제를 해결해 준다. 그러나 진실한 아름다움이란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내적인 아름다움일 때 가식 없는 아름다움으로 다시 정의 내려진다. 골칫덩이인 아름다움을 멀리하는 또 다른 방법은 바로 아름다움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여자이다. 사람들은 그 여자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이 말은 미인들을 도덕적으로 불신하게 만든다. 동양적인 사고에 따르면 외모가 예쁜 사람들은 내면이 형편없다.
지능 또한 필연적으로 편안한 외모에 더 점수를 준다. 클라우디아 쉬퍼 같은 모델을 멍청하다고 여기는 것도 바로 우리 교양 있는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다. 그렇게 미인들은 전 분야에 걸쳐 천재 등으로 유명해진 재능 있는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 한다. 예쁜 얼굴은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어, 라는 말 역시 아름다움에 대한 거부를 드러낸다. 학술적인 결과에서 나온 확신도 아니면서 이런 말들은 멈추지 않고 퍼져 나간다. 평가절하 이론 중에는 이런 말도 있다. 아름다움은 차갑다, 동화에도 예쁘지만 매우 차가운 여왕과 공주들이 득실거린다. 정말 따스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은 대개 어떤 무거운 숙명을 동반한다. 예쁜 소녀는 불쌍하거나 마법에 걸리거나 고아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도움이 필요한가. 그리고 그것이 또한 왕자나 임금의 눈을 멀게 한다.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순간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충동이 작동하는 듯하다.
혼란의 기운
이런 평가절하 반응은 아름다운 상대방에게서 느끼는 열등감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또한 예쁜 것과 좋은 것을 동일시하는 습관의 산물이기도 하다. 프랑스 출신의 르네상스 학자 다비등 드 인플루엔자 랑스 리보는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움은 우리의 감각을 지배한다. 우리의 의지를 통제하며 우리의 자유를 박탈한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리움에 사무치게 하고 정열을 솟구치게 하며 관능에 불타오르게 한다. 아름다움은 분명 자유를 박탈하는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물론 우리 자신도 예쁜 종업원에게 팁을 더 주며 외모가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더 상냥하게 대하며 그를 더 신뢰한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마음에서 우러나 행동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자유의지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욕망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예쁜 얼굴은 우리를 끌어당긴다. 그래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우리는 쳐다보아야만 하고 놀라워해야만 하고 관심을 보여야만 한다. 아름다움은 우리를 유혹해서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 아름다움은 우리를 다치게 하고 불안전하게 하며 미숙하게 만든다. 프랑스 여류 철학자 시몬느 베 유는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움은 당신의 평상심을 깨뜨린다.그리고 그 때문에 혼란의 기운은 계속되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저항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겠지만 자기 존중을 완전히 잃어버리면서 아름다움을 떠받들 뿐이다. 당연히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권력을 휘두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 세대의 아름다움이 도래하면 우리는 다시 기쁨으로 만세를 외칠 것이다.
올리히렌츠 지음/박승재 옮김.(2008).아름다움의 과학.프로네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