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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지속적인 수요를 충족시키는 최상의 상품

by blogger82391 2025. 3. 5.

아름다움은 언제나 지속적인 수요를 충족시키는 최상의 상품이다. 또 아름다움은 문자 그대로 사회의 중심 화폐이다. 그것은 지위 현금 원조와 교환할 수 있는 최고의 재산인 동시에 또한 내면 가치 신용 생기 사랑과 교환할 수 있는 재산이기도 하다. 사랑 역시 그저 하나의 교환품에 불과하다는 말은 우리 안에 깊숙이 간직되어 있는 로망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우리는 남이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사랑받기 위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복싱장의 라운드걸이나 파티광 여자를 욕하고 우크라이나에서 온 결혼 후보자들의 매춘을 마음속으로 비난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등한 위치와 외관에 있는 아름다움의 서랍에서 파트너를 찿는 우리가 그런 사랑을 정상적인 사랑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혹시 그게 더 좋은 것은 아닐까?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그럴지도 모른다. 착취 미숙 등등에 대한 모든 의심은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되고 더 편리하며 성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지속적인

 

우리의 사랑이라고 해서 외모에 구속받지 않는 건 아니다 

처음에 아름다움은 순수함으로 작용해서 짝을 만나게 해준다. 컴퓨터 댄스에서처럼 우리는 그 순간 자신의 반사를 따른다. 예컨대 우리는 나에게 당신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미인이십니다 라도 말할 수도 있고 사랑에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미모라는 하나의 결정적인 조건을 따를 수도 있다. 또한 평등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아름다움은 결혼 입회인이기도 하다. 결국 사랑도 진화생물학적 견해에서 보면 일종의 유전자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교활한 속임수로 우리의 에너지를 후손 양육에 투자하도록 자극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느낌과 환상을 제공한다. 우리의 사랑은 고결하며 파트너를 믿고 정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게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이미 세상에 태어나기 오래전부터 우리의 사랑이 정해져 있었다고 믿게 만들기도 한다. 생명체로서 우리 본성을 생각해 볼 때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은 도대체 얼마나 자유로운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생물학에는 어떤 감각도 어떤 운명도 어떤 신도 없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의 기본적인 순환논증만이 있을 뿐이다. 삶의 목표는 삶 그 자체이다.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 또 다음 세대가 나오고 계속 그렇게 반복될 뿐이다. 목표는 그 인생의 당사자 자신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순환 논증적인 삶은 허무주의에 빠져들 기회만 더 제공하는 건 아닐까?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이렇게 말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우리 유전자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쇠사슬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길고 유연한 밧줄에 구속되어 있다. 우리는 자유도를 갖는다. 이 자유도가 얼마나 크냐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그 자유도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우리는 윤리 규범이라는 재능을 갖고 태어났고 항상 있지는 않지만 매 상황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우리와 유전자를 나누지 않은 사람들 지구 반대편에서 기아나 재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기부금과 동정과 원조를 쏟아낸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유전자에 의해 조종당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생물학적으로는 무의미하지만 볼 때 분명 옳은 일이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 이유는 어쩌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우리가 문화라고 명명하는 사회적인 삶의 장이 하나의 시장이라는 사실이다. 이 시장처럼 희귀한 재산을 교환하는 장소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느낌은 이 시장에서 우리가 부족한 것을 다룰 때 처음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느낌은 이런 부족한 재산을 쟁취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생명에 필요한 자원을 얻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얻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섹스 파트너이다. 섹스는 우리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그 때문에 우리의 신경계는 섹스를 중심에 놓는 감각들을 유지한다. 또 우리의 신경계는 우리 자신을 위해 가장 생식능력이 좋은 상을 마련해 두기도 하고 가장 나쁜 고통을 준비해 놓기도 한다. 사랑과 증오 믿음과 배신 쾌락과 절망 매혹과 질투 평등과 분노 이런 것들은 자연스럽게 넘쳐나는 느낌들이긴 하지만 남들에게 잘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 느낌들이다. 만약 우리가 아메바처럼 무성생식을 통해 우리 스스로 증식시킨다면 남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는 느낌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은 우리 인생에 색채를 더해준다. 우리의 역사와 드라마가 나올 수 있게 하며 우리가 문화라고 명명하는 것을 존재하게 해준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마저도 하나의 시장이 된다면 어떤 기반도 어떤 감각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아마 고통을 느끼지 않는 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열정도 사라질 것이다. 우리의 삶은 모든 느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마치 아메바의 삶처럼 가볍게.

 

 

 

올리히 렌츠 지음/박승재 옮김.(2008).아름다움의 과학.프로네시스.